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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한 사람은 도망치고 싶을 때, 갈 곳이 없다기억 2023. 9. 5. 10:14
남편 회사에 안좋은 일이 생겨서 며칠째 저기압이다. 나는 되지도 않는 리액션을 해주기 위해 거듭 질문도 하고 같이 화도 내고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도 물어보면서 최선을 다해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했다. 갑작스런 해외 출장이 잡히자 짐을 챙기는 걸 도왔다.
주말에 일찍 일어나는 걸 힘들어하는 편인데, 일찍 일어나 잘 가라는 인사를 하고 보냈다. 아침부터 청소, 설거지, 빨래를 하면서 오전을 채웠다. 아무 일도 없었더라면 함께 갔었을(가기로 했던) 주말 일정도 혼자 갔다. 남편에게 일이 생기면서 못가게 된 것이라 서운해 할 이유도 없다고 생각했다.
남편이 사건을 해결하고 몸도 마음도 지쳐 집에 돌아왔을 때 편히 쉬었으면 하는 마음에.. 기분 좋으라고 계속 집을 치웠다. 음식 쓰레기를 버리고, 빨래를 한 번 더 하고 개고, 다시 한 번 청소를 했다. 밥을 안치고 설거지를 했다.
집으로 돌아온 그를 위로하기 위해 또 다시 적절한 질문들을 하고 관심을 보이고 공감의 리액션들을 했다.
그러면서도 이해가 안되는 건.. 해결 방법을 찾거나 받아들이고 수용하거나 둘 중에 선택할 수밖에 없는데 왜 계속 짜증 내고 화를 낼까. 그런 것이다. 내가 개선할만한 위치나 능력이 안되면 상황을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다. 반면, 능력이 되면 계획을 세우고 추진하면 된다. 이도저도 아닌 것 같지만 열심히 들어줬다.
다시 월요일. 출근하는 남편을 다시 응원하고 위로했다. 남편은 출근해서 일을 수습하고 점심 때쯤 집으로 들어간다고 했다. 스트레스를 받아서 그냥 집으로 간다고 했다. 그런데 또 무슨 일인지 사건이 생겨서 전화가 왔나 보다. 또 짜증이다. 자기는 집에 가서 오후를 보냈지만, 나는 이른 아침부터 저녁까지 일을 하고 지쳐서 귀가하는 길에 부랴부랴 전화를 했더네 기분이 너무 안좋다고 난리다. 그래서 위로를 또 쥐어짰다.
근데 그래서 오늘 저녁에 가기로 되어 있는 운동을 안가겠다고 한다. 갑작스러운 일정 변경에 당황했다. 나는 일정이 변경되면 불편하다. 어느 정도 미리 알려줬더라면 어땠을까. 나도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었을텐데.. 내내 회사에, 사람에, 그리고 남편의 짜증에 시달린 채였던 나는 그나마 퇴근한 후 남편이 (운동 후) 귀가할 때까지 2-3시간 남짓의 휴식이나마 기대를 했던 것이다. 이 상황이 내게는 너무 갑작스러웠다. 빨리 오라고 재촉하는 남편의 말에 선뜻 그러마는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 잠시나마 쉬면 다시 위로할 에너지를 모을 수 있을 것 같은데.. 잠깐의 휴식도 내게는 허락되지 않는구나..감당이 되지 않았다. 집에 가서 또 감정을 받아낼 자신에 없었다. 그래서 답을 못하고 미적거렸더니 집에 오기 싫으냐고 묻는다. 마지 못해 무슨 대답이라고 해야 겠어서 “뭐 내가 빨리 간대고 가지나. 그냥 가는 거지” 그랬더니 남편이 바로 기분이 상해서 “말 좀 예쁘게 해주면 덧나냐”고 말하고 서로 끊었다. 원하는 답변을 듣지 못하는 것조차 기분이 나쁜가 보다. 잠깐 혼자 있고 싶은 게 나를 추스를 수 있어야 남도 챙길 수 있는 거 아닌가? 그 정도도 이해 못하는 걸까?
집으로 가는 발걸음이 천근만근이다. 집에 가기 싫다. 가고 싶지 않다. 갈 곳이 없다. 그렇지만 가야만 한다. 갈 곳이 없기도 하지만.. 갈 곳이 있다 해도 안가면 싸움의 씨앗이 될 테니까.. 나는 내 발로 내 선택으로 걸어가 집으로 가고 있지만, 내가 원하는 것은 아니다. 어쩔 수 없이 가야 하는 거다.
내가 문제일까?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하는 걸까? 공감이 되나? 어떻게 더 달래줘야 하는 걸까? 충분하지 않나?
몸에 맞지 않은 옷을 입은 것처럼 공감하는 척하는 내 본질과의 괴리에 힘이 든다. 물론 공감이 되는 부분도 있다. 나도 그런 힘든 일들이 생기니까.
하지만 기간이 오래 지속되면 자신이 없다. 더욱이 내가 일으킨 일도 아니다. 그 빌미를 제공한 자들에게 화를 내고 해결책을 찾아야 하지 않나? 왜 나에게 이러는 걸까.
난 그저 잘해주려고 노력했을 뿐이다. 그리고 그것이 오래 지속되지 않거나 잘 되지 않았을 뿐이다.이해 안되는 것 하나 더. 나는 공감을 잘 못한다고 생각하는데.. 상대방의 기분에 왜 이렇게 영향을 많이 받을까? 남편의 기분이 좋지 않다는 것을 안 순간 기분이 수렁 속으로 빠져들면서 우울감이 빠르게 차올라 넘실거렸다. 감당이 안되는 부정적인 기분.
집에 가기 싫은 건 또 왜일까. 나도 답답할 때 간단하게 옷만 갈아입고 드라이브라도 다녀오고 싶다. 잠깐 나가서 카페라도 가서 리프레시하고 싶다. 그런데 그러기엔 대중교통이나 도보로 이동하기엔 이 시골에서 기회비용이 너무 많이 들어간다. 남편은 차가 있기 때문에 나가고 싶으면 얼마든지 나가서 바람을 쐬고 올 수 있다. 그는 결국 운동을 갔다오겠다며 내가 퇴근하기 전에 나갔다. 나에게 이동의 자유가 없다는 사실이 더욱 숨을 막히게 한다.
나는 회피형 인간이다. 이런 일이 생기면 도망치고 싶은 생각부터 든다. 아 집에 가기 싫다. 어디론가 가버리고 싶다. 이대로 그냥 완전히 혼자 있고 싶다. 누가 언제 돌아올지, 그때 어떤 표정으로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누군가에게 억지로 웃어주고 괜찮은 척 하는 것은 사회생활에서 충분하지 않을까. 집에서도 근무의 연장인 듯하다. 나는
지칠대로 지쳐서 억지 미소를 짓는다. 거울을 보니 내가 왜 요즘 웃는 것도 우는 것도 아닌 이상한 표정을 짓고 있는지 알 것도 같다.
회피하고 싶은 마음을 꾸꾹 누르고 남편에게 미안하다고 메시지를 보낸다. 보내면서도 내가 왜 미안해야 하는지 억울하다. 잘못한 건 내가 아니라고. 그리고 나도 충분히 지친다고. 징징거리지 말고 차라리 해결을 하라고. 말을 예쁘게 안한 건 또 뭔가. 난 최대한 말을 고르고 골라서 답한 거다. 그럼 내 마음 속에 있는 말을 그대로 했어야 하나? 집에 가고 싶지 않다고? 집에 가서 다만 몇 시간이라도 쉬고 싶은데 너의 짜증과 화를 다 받아내고 눈치보고 싶지 않다고? 어차피 자제하고 배려해도 말을 예쁘게 하지 않는다는 얘기를 듣는데 이토록 열심히 말을 골라야 하는 이유는 뭘까? 그의 말대로 내가 공감 능력이 모자란, 사이코패스인 건가?
집에 가기 싫어진 걸 눈치 채놓고 굳이 묻는 사람의 저의는 무엇일까. 그냥 좀 넘어가면 안되는 걸까? 얼마나 더 내가 아닌 내 모습으로 어떤 척들을 해야 할까. 하면 할수록 상대방은 더 더 더 하길 바란다. 만족하는 법을 모르는 것 같다.
내가 너무 매정하고 비인간적으로 보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나는 노력을 하고 있다. 얼마나 더 꾸며내야 하는 건데.
그럼 반대로 얼마 전에 내가 회사 일로 너무 힘들어서 한동안 힘들어하고 그 후에 조금 괜찮아진 후에서야 겨우 조금 언급하면서 그 일로 그동안 여러 번 울었다고 했을 때도 더 묻지도 궁감해하지도 않았던 너는 뭔데. 본인은 안하는 걸 내게 왜 강요할까..어제 그러고 나서 남편은 남편대로 기분이 상해서 같이 운동하는 사람들과 맥주를 마시고 늦게 들어왔다. 나는 초저녁부터 잠을 자버렸다. 불편한 마음에 중간중간 자꾸 깼지만 재차 잠을 청했다.
방법은 다음에 이런 일이 생기면 바로 집으로 가지 않고 밖에서 시간을 보내다 가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퇴근할 때 전화를 하지 말자. 운동을 갈 건지 먼저 물어보자. 야근을 한다든지 핑계를 대서라도 내 마음에 여유를 찾고 난 후에 대화를 하거나 집으로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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