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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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적인 아름다움, 불꽃축제에 대한 단상기억 2023. 10. 13. 11:25
거창한 제목이다. 하지만 매년 가열차게 터트려대고 몰려가는 불꽃축제에 대해 한 마디 쓰지 않고서는 못 배기겠다. 불꽃축제를 즐기려고 간 건 아니었다. 일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관련 행사를 멀리서 나마 참관하고 행사가 끝나기 전, 본격적으로 귀가 행렬이 시작되기 전에 돌아가려고 건물 밖으로 나갔을 때였다. 여의도 일대를 가득 채운 화약 냄새..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니 어두워진 밤하늘이 희뿌옇게 장막을 두르고 있었다. 이 광경을 보기 전까지만 해도, 불꽃축제에 딱히 의견은 없었다. 다만 붐비는 곳에 가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가봐야 겠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을 뿐이다. 즐길 사람은 즐기고, 취향이 아닌 사람은 안 가면 된다고. 그렇게 생각했던 것이다. 실제로 접하고 보니, 이게 맞나? 하는 생각이 머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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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한 사람은 도망치고 싶을 때, 갈 곳이 없다기억 2023. 9. 5. 10:14
남편 회사에 안좋은 일이 생겨서 며칠째 저기압이다. 나는 되지도 않는 리액션을 해주기 위해 거듭 질문도 하고 같이 화도 내고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도 물어보면서 최선을 다해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했다. 갑작스런 해외 출장이 잡히자 짐을 챙기는 걸 도왔다.주말에 일찍 일어나는 걸 힘들어하는 편인데, 일찍 일어나 잘 가라는 인사를 하고 보냈다. 아침부터 청소, 설거지, 빨래를 하면서 오전을 채웠다. 아무 일도 없었더라면 함께 갔었을(가기로 했던) 주말 일정도 혼자 갔다. 남편에게 일이 생기면서 못가게 된 것이라 서운해 할 이유도 없다고 생각했다. 남편이 사건을 해결하고 몸도 마음도 지쳐 집에 돌아왔을 때 편히 쉬었으면 하는 마음에.. 기분 좋으라고 계속 집을 치웠다. 음식 쓰레기를 버리고, 빨래를 한 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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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이라는 이름의 무게기억 2022. 5. 24. 18:42
답답하고 무거워 하소연할 곳이 없어 블로그 창을 열었다. 어디서부터 써야 내 마음이 풀릴까. 무거운 돌이 얹어져 있는 것처럼 숨이 잘 쉬어지지 않는다. 세 형제가 서른을 넘긴지 오래인데 여전히 책임감 없고 이기적인 형제들 사이에서 엄마를 달래고 연락을 취하고 일정을 조율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건 언제나 내몫이었다. 툭하면 잠수를 타는 남동생, 엄마에게 받은 피해로 인생이 안풀린다며 연락을 끊어버린 언니, 슬프고 힘든 마음을 내게 털어놓으면서도 언니와 동생을 이해하고 포용해주길 바라는 엄마... 그리고 이 상황에 대해 끊임 없이 질문하고 답답해하는 남편까지. 왜들 이럴까. 뭐든 내게 맡겨놓은 것처럼 구는 게 너무 싫어서 도망치고 싶다. 진절머리가 난다. 꼴도 보기 싫다. 대단한 금전적 피해를 입은 것도 없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