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액트 오브 킬링(The act of killing, 2014)다큐멘터리(해외) 2023. 10. 4. 13:31
한줄평** 영화가 할 수 있는 가장 뜨겁고 차가운 일.
줄거리
영화는 인도네시아 학살(1965년과 66년 사이에 공산주의자로 간주된 자들에 대한 대규모 학살)에 대해 다루고 있다. 반공주의 광풍으로 인해 5천 만 명이 학살되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학살자들의 일부를 인터뷰하는 다큐멘터리로, 주인공은 손수 사람들을 죽였던 안와르 콩고다. 안와르 콩고는 수많은 공산주의자를 죽인 영웅으로 살아가고 있다.
당시 연관된 사람들의 인터뷰도 이어진다. 안와르가 지시를 받았던 신문사의 발행인은 안와르는 아무것도 아니고 지시한 대로 따르는 자일 뿐이라고 말했다. 끌려온 자의 결백은 의미 없었고, 대답은 본인들이 원하는 대로 바꿨다고 당당하게 말했다. 자신은 눈만 깜빡이면 되었기에 사람을 죽이는 천한 일은 하지 않았다고.
이들이 소속된 판차실라 청년회는 여전히 인도네시아의 무장단체다. 당시에도 공산주의자들을 죽이는 데 구심점이 됐다. 이들은 인도네시아 독립에 큰 역할을 했지만 평범한 사람들을 죽이는 데에도 큰 역할을 했다. 그것을 위해서라면 동네깡패도 마구 동원했다.안와르 콩고가 위대한 영화를 만들기 위해 그가 행한 살인의 기억을 되짚어가는 동안 우리도 그의 기억을 따라, 그의 시선을 따라 과거로의 여행을 떠난다. 하지만 완전히 그의 시선에서만 발화되는 중에도 그의 입장과 관객의 입장은 좁혀지지 않고 오히려 간극이 커지기만 한다. 살인을 재현하고, 고문과 살인을 당하면서 안와르 콩고는 피해자의 감정을 조금씩 이해하게 되는 걸까?
“당신이 저지른 학살을, 다시 재연해 보지 않겠습니까?”
대학살의 리더 안와르 콩고와 그의 친구들은 들뜬 맘으로 직접 시나리오를 쓰고 연기도 하며 자랑스럽게 살인의 재연에 몰두한다. 하지만 촬영이 진행되면서 대학살의 기억은 그들에게 낯선 공포와 악몽에 시달리게 하고, 영화는 예기치 못한 반전을 맞는다.완와르 콩고는 당시 함께 사형을 집행했던 아디 줄카드리를 다시 만난다. 둘은 오픈카를 타고 사람들을 학살한 일을 아무렇지도 않게 웃으며, 자랑스럽다는 듯 이야기한다. 심지어 아디 줄카드리는 당시 중국인 학살 사건으로 (여자친구가 중국인이었음) 여자친구의 아버지까지 죽여버렸다. 역시나 웃음..
공산당원 심문장면을 찍으면서도 웃음 만발이다. 스텝 중 한 명이 안와르의 이웃에 살았다고 한다. 돌연히 자기 이야기를 한다. 이 자가 불과 11살이던 무렵, 중국인이던 새아버지가 한밤중에 살해당해 길가에 버려졌다. 할아버지와 11살이던 자신이 큰길에서 길가로 간신히 끌고 가 묻었단다. 아무도 도와주지 않았고, 이들은 단지 중국인의 가족이었다는 이유로 정글 속 판자촌에 버려져 학교에도 가지 못한 채 자랐다고 한다.
이런 얘기를 들어도 가해자들의 감정에는 일말의 죄책감도 없다. 심지어 아디 줄카드리는 본인에게 전혀 죄가 없다며, 부시의 관타나모는, 카인과 아벨은 왜 가만히 두냐며, 그들부터 처벌하라고 한다.
국민영웅인 안와르 콩고는 국영방송에 출연해 특별담화 초대석에 앉기도 한다. 판차실라청년회와 극장의 프레만이었던 안와르 콩고들이 죽인 공산주의자가 무려 250만이나 된다고, 진행자가 활짝 웃으며 박수를 보내달라고 말했다. 소름끼치는 장면이었다.
* 사람들은 말을 하고 싶은, 자기 이야기를 하고 싶은 욕구를 참을 수가 없나 보다. 말만 시켜주면 아무 말이나 막 하는 걸 보면..
** 혼란스러웠던 점은 안와르 콩고의 뒤늦은 깨달음과 회한의 순간에 안도하는 내 자신이었다. 이제라도 알게 되었다는 것에 대한 안도감과 함께 수많은 사람을 죽이고도 아무렇지 않게 살아오다가 이제야 깨닫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아니면 그래도 어떠한 의미가 있는지, 혹은 저 또한 연기의 일부인지, 아니기를 바라는 마음이 뒤섞였다.
*** 안와르 콩고는 정말로 고통스러워했을지도 모른다. 실제로 자기 손으로 사람을 죽이고 죽는 모습을 보고, 고통에 울부짖는 광경이 여전히 생생하기 때문에. 그리고 고통스러워야 마땅하기도 하다.
하지만 직접 손에 피를 묻히지 않은 더 윗선의 사람들은 전혀, 아무렇지도 않게 여전히 권력의 중심에서 많은 사람들을 이끌고 호의호식하면서 살아가고 있었다.
이게 맞나? 어쩌면 하수인이었을 안와르 콩고가 토악질을 하고 있는 동안에 그들은 일말의 죄의식도 없이 멸종위기종인 동물을 직접 사냥해 박제한 컬렉션들과, 크리스티 경매장에서 고가에 산 물건들을 자랑하면서.. 여자들에게 더러운 추파와 농담을 던지면서 (언제라도 다시 사람들을 매도해 죽일 수 있다는 듯이) 살아가고 있었다.
우리는 안와르 콩고를 증오해야 옳을까? 당연히 콩고의 죄는 매우 크다. 권력에 기생해 좋은 옷, 좋은 음식을 추치하기 위해 사람들을 살상한 것이니까. 하지만 그 일을을 하도록 한 사람들의 죄는 더 무거워야 할 것이다.
영화 평론가 이동진의 한줄평 “내가 이 영화를 잊을 수 있을까” 처럼 뇌리에 장면들이 깊이 박혔다.
이 다큐멘터리가 없었다면 안와르 콩고의 죄의식은 결코 피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나를 비롯한 타국인들은 이런 일들을 알지도 못했을 것이다.
그들이 행한 일이, 그리고 역겨운 자기 합리화가 드러나지도 않았을 것이다. 아무런 거리낌이 없기에 있는 그대로 보여준 그 더러운 모습들이 고스란히 담겼다. 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는 작품으로서의 의미도 있지만 기록물로써 남을 것이다.
다시 한번 말하고 싶다. 영화가 할 수 있는 가장 뜨겁고 차가운 일. 그것을 이 영화가 만들어 낸 것이라고. 이 영화는 촬영을 함으로써 안와르 콩고와 그 일당들에게 내적 변화를 일으켰으며, 관람한 이들에게 알고 느끼게 했으며, 기록으로 영원히 남게 되었다.
이 영화는 인도네시아에서는 정식상영되지 못했지만, 유튜브에서는 인도네시아어로 무료로 시청이 가능하다. 국내에서는 네이버 시리즈를 통해 결제하면 영구적으로 볼 수 있다.
시간: 160분
감독: 조슈아
출연: 안와르 콩고
장르: 다큐멘터리'다큐멘터리(해외)'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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