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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라코타 전사들의 수수께끼(Mysteries of the Terracotta Warriors, 2024) : 이렇게 나의 진시황 덕질이 시작되었다!다큐멘터리(해외) 2024. 6. 20. 09:40
진시황이 묻힌 무덤과 그곳을 지키는 8,000명의 전사들에 대한 다큐멘터리. 흔히 병마총이라 알려진 진시황릉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지난 6월 초에 넷플릭스에 공개됐는데, 예고편을 보고 굉장히 취향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일주일도 지나지 않아 재생버튼을 눌렀다. (신속!ㅎㅎ)
terra(땅, 흙)에 굽는다는 뜻으로, 찰흙으로 빗고 구워서 만드는 것을 테라코타라고 한다. 나에게는 병마용이라는 말이 더 친수해서 테라코타? 생소했지만 예고편을 보면 알 수 있다.
진시황의 무덤은 기록으로만 남아있다가, 1974년 우연히 지역 농민들이 우물을 파려다 발견한 것으로 지금까지도 발굴이 다 이뤄지지 않아 세계 8대 불가사의로 불릴 정도로 그 거대한 규모와 섬세한 기술력으로 잘 알려져 있다.
무슨 수수께끼를 풀어냈을까 궁금했는데, 전문가들의 인터뷰와, 진시황릉을 보여주는 영상, 진시황과 그의 후계 과정과 병마총 제작 모습을 드라마 형태로 구성하여 더욱 흥미로웠다.
* 잠깐 나왔지만 ㅎㅎ 호해 왕자역의 배우님이 뽀송하고 귀여웠음..
*** 스포 있음
다큐가 스포랄 게 있을지 모르겠지만..
테라코타 전사들은 그 생김새가 모두 제각각이다. 수천 명의 (아직도 다 발굴되지 못한) 테라코타 전사들의 발굴 현장이 비춰진다. 미디어에서 보여지던 병마총은 병사들이 대열을 이뤄 모여있는 모습이었는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고, 부서진 채로 뒤엉켜있었다고 한다. 부서진 조각들을 발굴하고 맞춰 하나의 병사를 재구성하는 데에는 몇 개월에서 몇 년까지도 시간이 걸린다고.
게다가 원래는 모두 채색이 된 상태(처음 발굴했을 때 공기와 접촉하면서 도료가 모두 산화되었음). 최근 발굴한 병사들은 최대한 채색이 손상되지 않도록 발굴하여, 색이 남아있는 부분들이 있고, 채색 복원을 하기도 했다. 단순한 채색인데도 생생한 느낌이 전해졌다. 특히 눈동자 채색은 기묘한 느낌을 줬다.
황릉 발굴에 있어서 몇 가지 미스테리가 밝혀지는데,
1. 누군가 파괴한 흔적이 있는가?
- 병마총의 병사들이 모두 부서져 있는데, 이 부서진 조각들의 파편이 자연적으로 부서진 모양이 아님. 또한 발굴 당시 쌓인 흙이 불에 탄 흔적이 있음. 게다가 바깥의 탑이 있었던 자리에도 탑 발굴에서 유사하게 불에 탄 흔적이 있는 토양이 발견됨
2. 진시황의 후궁과 다른 왕자들은 잔혹하게 살해되었는가?
- 무덤 주변에 묻힌 인장과 토막난 채 잘린 남녀의 유해, 진주로 장식한 귀금속이 발견됐다. 그러나 법의학자의 분석에 의하면 살아있을 때 잘린 것이라기 보다는 죽은 후에 토막낸 것으로 보인다고 한다. 사기의 기록처럼 후궁과 왕자들은 모두 죽임을 당하고 릉에 묻혔으나 살아있을 때 사지를 찢어 죽인 것은 아닐 듯
3. 고위 귀족의 관이 발견됐다?
- 릉 인근, 특별한 묘와 관이 발견되었다. 관은 많이 부식되었지만 함께 묻힌 유물로 미루어 굉장히 높은 신분의 인물일 것으로 추정된다. 정부에서 (아마도 발굴 기술이 더 고도화된 후에 진행할 예정이었던 것 같으나, 비가 내릴 때마다 침수 위험이 있어서..) 발굴 승인이 떨어졌다. 관과 유해가 최대한 손상되지 않도록 관 밑으로 땅까지 떠서 올리는 작업을 진행함.
- 아마도 호해 왕자가 왕이 된 후 (몰살을 피하기 위해 자살하겠다고 청했던) 고 왕자의 유해일 것으로 추정. 법의학자가 유해 일부를 가져가 조사했는데 20-30대 정도의 남성으로 보이며, 치아의 상태로 볼 때 영양상태가 좋은 것으로 보아 귀족일 가능성 높음
- 이 발굴과 연구가 성공하면 사마천 <사기>의 기록이 해당 유골과 유물을 통해 그 내용이 허구가 아님이 증명될 수 있어 역사학계가 술렁대고 있다..는 내용
*좋았던 점
- 각국의 사학자, 발굴 작업자들, 복원 작업자들, 처음 발굴한 할아버지, 법의학자까지 다양한 사람들을 인터뷰함
- 중간중간 드라마를 통해 진시황의 죽음과 호해왕자의 승계 과정, 왕자들의 죽음, 무덤 조성 과정들을 보여줘서 이해가 잘 됐다. 재미도 있음
- 멋진 빌드업. 역시 넷플팀이라 그런지 빌드업이 잘 되어 있어서 처음엔 '흠- 흥미로운데..' 정도로 보다가 '와! 이거 밝혀지면 씨- 장난 아닐 것 같은데!!!'로 넘어가게 함
- 뛰어난 영상미와 편집기법
*아쉬운 점..
- 아쉬운 점을 쓰기에 앞서 나의 무식함 때문이었으리라 생각하지만, 그래도 대다수 나와 비슷한 수준의 정보를 가지고 이 다큐를 본다면, 이런 점이 아쉬울 거라고 생각하고!
- 엄청난 빌드업, 그리고 허무한 결말... 많은 다큐멘터리가 이런 방식이긴 하지만.. 몇십 년간 연구를 해왔기 때문에 끝날 때쯤엔 뭔가 엄청난 발견이 있을 줄 알았지만?! 허무했다.. 시작할 때부터 '이게 밝혀지면 학계뿐 아니라 문명사의 엄청난 발견임!', '우리 막 두근두근하고 난리남!', '그래서 이거 발굴하게 됐고, 이런이런 걸 밝혀낼 거야!'하고.. 끝났다. ??????????????? 그래서 .. 뭔데 어떻게 됐는데?ㅠㅠㅠ 아니 그럼 연구를 더 하고 나서 다큐 촬영과 편집을 했어도 됐잖아?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황당..
- 그러고 더 찾아보다 보니.. 다큐멘터리에 나온 내용들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도 많았다.. 그래서 이 발굴이 더 의미가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음. 하지만 적당히 아는 사람과 잘 아는 사람 둘다 재미있게 볼 수 있도록 만든 콘텐츠라는 생각이 들긴 했음
진시황, 그는 누구인가
다큐멘터리가 다소 싱겁게 끝났기 때문에 내 알고잽이 버튼이 눌러져 버렸다. 진시황은 누구이며, 지금까지 내가 역사책이나 들어온 정보와 어떤 점들이 다른지 이번 기회에 털어보기로 했다. 찾아 보니 의외로 진시황에 대한 기록은 (언급되는 것에 비해) 많지 않아서, 주로 사마천의 <사기>의 기록에 기반하고 있다고 한다. 사마천의 사기는 이전 왕조에 대해 비판적 시각을 가질 수 밖에 없었으므로, 다소 편향되어 있을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 더욱이 역사적 사실만을 기록했다기 보다는 전설이나 설화가 일부 내용에 담겨져 있어 교차 검증이 필요한 상황이지만.. 비교검증할 자료가 없다는 점도 (일반인에게는 아니지만)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라고 한다.
그것을 알고 본다면 해당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더 흥미롭게 따라갈 수 있을 것 같다.
그래서 이왕 알게 된 김에 내 방식대로 정리해보면서 파악해보기로 했다.
진시황에 대한 자료 및 진왕조에 대한 역사기록은 사마천의 <사기>와 유향의 <전국책> 정도를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신뢰도가 낮다고 평가되는 이유가 있는데, 이는 진시황 시대보다 백 년 이상 지난 후의 기록이며, 사실과 전설의 구분이 모호하여, 왜곡의 의심마저 드는 부분이 있기 때문. 어쨌든 자료에 의하면-
진시황은 그의 아비가 여불위(진나라 유력 정치가)의 눈에 들어 안국군(왕자)의 양자로 들어가면서 운명이 바뀌게 된다. 안국군이 즉위한 지 사흘만에 죽자, 진시황의 아비인 '자초'가 왕위를 계승해 '장양왕'이 됐다. 여불위는 이로써 무소불위의 권력을 잡게 되는데..
장양왕 역시 3년 후 승하하고, 진시황이 (당시 '영정') 13살의 나이에 왕이 된다. 여불위는 어린 왕을 앞세워 권력을 주물렀으나, 10년이 흐른 23세의 진시황은 여불위를 숙청하고 전국통일을 차차 이뤄나간다.
진나라는 221년에 제나라를, 230년에 한나라를 멸망시킨 후, 조, 위, 초, 연나라를 잇달아 멸망시켰다. 스스로 황제가 된 진시황은 무력 통일을 뒷받침하기 위해 사회/경제/문화적 통일을 강하게 추친했다. 가장 먼저 여러 나라의 화폐를 통일하고, 도량형, 문자 통일, 만리장성 축성, 포장도로 건설, 봉건제 폐지, 군현제 실시 등이었다. 기존의 지방관이 지역의 왕과 다름없었던 것을 폐지하여 힘을 빼앗고, 중앙정부에서 지방관을 파견해 관리하는 식이었다. 급진적 변화였기에 반발이 많았으리라 짐작할 수 있는데, 이때 기존 학자(유학자)들의 반발이 가장 거세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한 탄압이 현재에 이르러서는 학자를 불태웠다, 책을 불태웠다고 전해지는데, 그보다는 언론과 사상을 탄압하였다는 정도로 보고 있다.
진시황은 분서갱유를 비롯해 아주 잔인한 왕이었다고 알려져 있긴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술과 향락, 여색에 빠져있었다는 비방은 없으며, 반대로 업무적으로 빡빡한 스타일이었다고 한다. 신하가 일을 잘했는지에 대한 의심이 많아 직접 확인해야 직성이 풀리는 피곤한 상사(?) 스타일..(나 녀석 반성하자.. 내가 회사에서 좀 이런 스타일..ㅠㅠ) 하루에 공문서를 직접 120근(대나무로 만든 문서)씩 처리하면서 먹지도 쉬지도 않았던 일 중독자였다. 자신에게 엄격한 만큼 신하들에게도 그만큼, 아니 그 이상을 기대했을지도..
시황제는 죽음을 매우 두려워했던 것 같다. 이어진 암살 시도 때문에, 암살을 피하기 위해 함양 인근에 궁전 270개를 짓고, 지하도로 드나들었으며, 자기가 어디에 있는지 모르게 했다. 밖에서도 볼 수 있는 가장 화려하고 거대하게 지은 것은 아방궁뿐이었다. 이것이 현대에는 사치스러운 건물의 대명사로 쓰이게 됐다.
이제 언급하려 하는 병마총을 포함한 황릉 역시 어마어마한 규모다. 만리장성, 궁전 270개와 지하도, 아방궁, 황릉 조성까지.. 거대한 토목공사가 많아지자 민생에 부담이 매우 커졌을 것으로 추측한다. 그는 재위 기간 동안 천하 순행을 총 5번 했는데, 마지막 순행길에 병을 얻어 죽음을 맞이했으며 이때 진나라의 운명은 바람 앞의 촛불이 된다.
진시황은 첫째 왕자 '부소'에게 황위를 물려주겠다는 유언을 남겼으나, 이는 전해지지 못했다. 당시 순행에 따라 나섰던 18번 왕자 '호해'를 내세운 승상 '이사'와 환관 '조고'의 모략으로 후계자가 바뀌게 된다. 유언이 아니라 살아있는 동안 후계를 바꾼 것으로 만들기 위해, 진시황의 죽음은 비밀에 붙여졌다. 후계자 변경 소식이 왕자들에게 전해지기까지 시간을 끌기 위해 진시황의 시신은 왕의 마차에 실려 (순행을 다니는 것처럼) 거리를 떠돌게 된다. 이때 시신의 부패가 진행되어 냄새가 점차 심해지자, 절인 생선을 실은 마차를 함께 이동하도록 해 냄새를 감추는 등 방법을 썼다고 한다.
이후 황제가 된 호해가 3년여라는 기간 동안 아버지의 후궁들과 형제들, 그들의 가족들까지 잔혹하게 죽였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참고 자료: 네이버 지식백과, 테라코타 전사들의 수수께끼, 나무위키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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