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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리스 레싱, 다섯째 아이 : 무서운 아기와 무서워하는 가족
    도서 2025. 3. 15. 15:23

     
    도리스 레싱의 1988년작, 다섯째 아이(The Fifth Child, Doris Lessing)


     
    줄거리
    보수적인 가족관을 가진 데이비드, 해리엇은 직장에서 만나 가정을 꾸린다. 그들은 전통적인 의미의 행복한 가정을 꿈꾼다. 그들이 생각하는 행복하고 이상적인 가정은 많은 아이와 함께 꾸리는 단란한 가정이기에, 8명의 아이를 낳기로 한다. 그러나 다섯째 아이 '벤'을 임신하면서 가정이 완전히 파괴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의문: 작가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
    1. 전통적인 가족의 모델(아이를 많이 낳은 행복한 가정)이라는 환상 : 많이 낳고자 하는 욕망
    두 주인공은 각자 성장환경에서 결핍을 갖고 있다. 이 때문인지 이 둘은 큰 집에서 많은 아이를 낳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이상적인 가정'을 꿈꾼다. 양가의 부모, 형제들은 현실적인 문제를 지적하지만 젊고 용맹한 두 사람은 개의치 않는다. 작가는 전통적인 가족의 모델이 그들의 사회적/문화적 배경에서 학습된 판타지일 수 있다는 뉘앙스를 풍긴다. 
    경제적인 문제, 돌봄 문제, 교육 문제가 모두 언급되는데, 주인공들은 이 모든 문제에 대해 회피하고 결국 부모의 도움을 받는 것으로 스스로의 책임을 전가한다. 

    2. 가족 구성원 간의 시각 차이 : 입장 차이
    '아이를 많이 낳는 것이 가정의 행복을 보장한다는 믿음'은 주인공 부부를 결속해주는 원동력이었다. 하지만 실제로 그 상황이 전개되자 남자와 여자의 입장 차이가 발생한다. 현실적으로 임신을 하고 출산을 하는 과정에서 신체 변화를 겪는 일, 육아를 전담하는 일 등은 여자의 몫이다. 반대로 다섯 명의 아이를 갖게 되자 발생하는 지출을 책임지기 위해 더 많은 일을 해야 하는 남자의 입장으로 인해 각자의 입장과 시각 차이가 점차 벌어지게 된다.
    그 갈등은 이상한 아기 '벤'이 등장하면서 극단으로 치닫는다.

    3. 이상한 아기 '벤'에게도 존재해야 할 가치가 있는가
    벤은 해리엇의 태중에 있을 때에도 기괴하고 공포스러운 존재였다. 지켜보는 내내 적대감을 갖게 하는 아기. 기묘한 사고방식과 행동, 성장 속도 등 결코 정상적이라 할 수 없는 이 아이도 존중받아야 할 가치가 있는가? 마치 엄마인 해리엇의 마음처럼, 그저 모른 척한 채로 벤이 죽어가도록 내버려 두고 싶은 마음과 아무런 죄도 없는 아기이자 생명에게 이런 짓을 해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오가며 죄책감과 공포를 느꼈다. 
    하지만 작가는 이 아이 역시 ㅡ 평범한 기준에 맞지 않는다 해도 ㅡ 자기 만의 기준과 가치관을 갖고 살아갈 이유가 있다는 사실을 이야기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 다시 입장 차이로 돌아오다..
    벤에 대한 공포와 두려움으로 가족들과 해리엇(벤의 엄마)는 대치 상태에 놓인다. 해리엇은 자신의 내면에서 충돌하는 두 가지 입장과 함께, 남편은 물론 친정 어머니와도 의견 충돌을 일으킨다.
    임신 중일 때는 해리엇의 과민 반응으로 치부하는 가족과 주변인들의 모습(모른 척하는 것으로 내 일이 아니게 되므로), 출산 후에는 더 이상 모른 척할 수 없게 된 모습이 상반되어 비춰진다. 
    남편은 벤을 두려워 하면서 보이지 않는 곳으로 치워버리는 것으로 편해지고자 한다. 그러나 그 무서운 아이를 몸속에 품고 있던 해리엇은 '이상한 아이일지라도'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인정하려는 모습을 보이는 반면, (직접 아이를 낳지 않아서 일까?) 자신의 아이라기 보다는 해리엇이 낳은 아이로 인식하는 데이비드의 입장이 느껴졌다. 
    꽤 비중있게 등장하는 해리엇의 엄마, 도로시 역시 의미심장한 인물이다. 어떻게든 딸을 보호하고 도우려는 입장을 갖고 있지만, 그녀 역시 딸의 입장을 이해하기 보다는 본인의 경험에 바탕을 둔 이기적인 방식으로 접근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일반적인 출산와 양육의 과정을 거친 자신의 경험의 스펙트럼에서 해리엇의 문제를 바라보고, 자신의 방법으로 문제해결 방법을 적용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자기 방식을 강요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 총평
    작품 해설을 제외하면 190쪽 내외의 짦은 소설인 '다섯째 아이'는, 굉장히 복잡하고 다층적인 고민을 담은 소설이다. 그러나 몰입감 있는 이야기와 빠른 속도로 전개되는 서사 덕분에 호기심과 공포로 마음을 졸이며 순식간에 읽게 되는 글이기도 하다. 
    이 책은 사회적, 계층적 갈등과 가족 내에서도 입장과 세대 차이에 따른 시각 차이를 보여주고 있다. 모성과 부성, 가족의 형태, 출산과 육아에 대한 문제, 개인의 개성과 특질에 대한 사회적 인식 등을 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작가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게 대체 무엇인지, 등장인물 중 어떤 입장에 처하더라도 내가 어떻게 결정하고 행동할지 갈팡질팡할 수 밖에 없는 혼란스러운 소설이었다. 괴롭다는 느낌. 
    책을 덮고 난 후에는 너무 많은 질문과 복잡한 감상 때문에 생각을 쉬이 정리하기 어렵다. 어떠한 결론을 내기는 어려운 소설이지만, 앞서 의문점으로 제시한 세 가지 질문에 대해 오래 생각해볼 수 있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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